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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국전·미전 흐름을 한눈에 본다

관리자

선전·국전·미전 흐름을 한눈에 본다 기사의 사진
정부가 1949년부터 주최한 대한민국전람회(국전)의 도록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미술공모전의 역사를 조망하는 ‘한국미술공모전 역사’전을 10월 31일까지 연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제공
 
 
일제강점기인 1922년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가 열렸다. 출품작 속 조선의 모습은 남루했다. 사람들은 나약해 보였고, 배경이 된 강산은 헐벗었다. ‘선전’이라 불린 이 전람회는 조선총독부가 식민지 문화 정책의 일환으로 마련했다.

식민지의 아픈 역사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44년까지 총 23회에 걸쳐 열린 선전은 가난한 화가들에겐 유일한 등용문이기도 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박수근과 천재화가로 불린 작가 이인성도 선전이 발굴했다.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한 박수근은 18세 때였던 32년 수채화 ‘봄이 오다’로 입선했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이인성도 17세 때인 29년 수채화 ‘그늘’로 입선했다. 이인성은 31∼36년 선전에서 내리 특선하며 스타작가로 발돋움했다.

선전을 비롯해 신진작가 발굴과 창작활성화를 주도했던 미술공모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서울 마포구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10월 31일까지 여는 ‘한국미술공모전의 역사’전이 그것이다.

해방 이후엔 관(官) 주도의 미술공모전이 미술계의 주요 이슈와 담론을 생성했다. 49년부터 정부가 주최한 대한민국전람회(국전)가 대표적이다. 국전은 입상 경력만으로도 성공의 지름길이 됐다.

서구 미술을 한국식으로 화폭에 담은 강정환 화백도 국전이 배출한 인물이었다. 당시 경남 산천의 초등학교 교사였던 그는 75년 유화 ‘회고’로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중앙 무대로 진출했다.

80년대에 생겨난 다양한 민전(民展)들은 미술 현장에 극사실주의 등을 알리며 영향력을 발휘했다. 뉴욕 시대를 마감하고 귀국한 김환기가 복귀를 알린 것도 민전을 통해서였다. 90년대부터는 다양한 방식의 기금 지원 시스템으로 전환된 뒤 공모전의 영향력이 축소됐다.

전시에선 미술 공모전 관련 도록, 팸플릿, 수상 메달·상장, 신문·잡지 기사 등 관련 자료 150여 점을 공개했다. 월북 작가 정현웅의 선전 특선 상장, 대전이 낳은 스타 이동훈 화백의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특선 메달, ‘대한민국미술제 규칙’이 담긴 대외비 자료 등도 선보였다. 해당 분야 전문가의 비평, 주요 공모전에 참가했던 원로 미술가의 인터뷰 내용을 수록한 단행본도 함께 내놨다.

김달진 관장은 “공모전에 대한 좋지 않은 시각도 있지만 그게 해낸 역할도 있다”면서 “누군가의 심사를 받기 때문에 작가들은 더 노력하며 성장할 수 있었고 시대에 따라 새로운 장르도 알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 국민일보 2014.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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